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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살아가는 땅엔
그곳이 어디든 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술 속에는
그 땅의 자연과
사람들의 시간과
맛과 멋이 어우러진
문화와 역사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2016년, <경기도민이야기>는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에게 매우 가까운 존재인 술을 매개체로 떠올릴 수 있는 삶의 이야기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 세번째 이야기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양평군 지평면 이동선님의 술과 함께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막걸리 한잔에 떠오른 옛 모내기 풍경
양평 양동면에서 나고 자란 이동선 씨는 스무 살이 되던 해 겨울, 고향을 떠나 지평으로 왔다.
“양동면 매월리에서 살다가 40년 전, 사랑하는 서방님을 따라서 지평으로 시집을 왔어요. 그때부터 지평에서 아들딸 둘을 낳고 살고 있죠. 지금은 손자까지 삼대가 지평에 살고 있어요.”

이동선 씨가 마실 수 있는 술은 막걸리뿐이다. 40년간 마셔온 막걸리의 주량 또한 ‘두잔’으로 소박하다. 하지만 그 두 잔에도 나름의 주도를 더해 즐긴다.
“술 종류를 잘 못 하는데 막걸리는 먹어요. 주량은 딱 두 잔.
그래도 나름 맛있게 즐기는 법이 있죠. 먼저 여름에는 막걸리를 받아다가 시원한 냉장고에 살얼음이 낄 때까지 넣어둬요. 적당히 얼음이 얼면 살짝 살얼음을 제치면서 떠먹는데…그 술맛이 진짜 맛있어요. 반대로 추운 겨울에는 따뜻하게 데워야지, 새끼손가락을 넣어봐서 따뜻하다 싶을 정도로만 살짝 데워서 먹으면 또 맛있고…”
막걸리 맛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청하자,
“감자전 하나 부쳐서 막걸리 먹자… 이거 밍숭맹숭해서 못하겠다.”
술맛 이야기는 막걸리 마시며 나눠야 한다며 주방으로 달려가 술상을 차려낸다. 상 위로 감자전이 놓이고, 돼지껍데기 편육에, 배추쌈까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지평막걸리 맛 차이는 별로 없어요. 맨날 같은 재료, 같은 도수로 막걸리가 나오니까… 다른 곳에서도 막걸리를 먹어보긴 했는데, 난 지평막걸리가 제일 맛있어요.”
최근, 사람들이 지평막걸리를 많이 찾는 이유 또한 아마도 변함없는 술 맛 때문일 거라 말한다. 그리고 그 술맛은 양평의 좋은 물 때문이 라고도 전한다.
“지평 땅이 물이 좋아요. 저 위쪽에 샘이 있는데, 나도 그 물로 장 담그고, 김치도 담고 손님상에 식수로 내고… 그래서 김장철이 되면 사람들이 물 받으러 지평에 많이 와요.
와서는 물도 받아가고, 술도 받아가고… 아무튼 물맛이 중요해요. 술은….”
그녀는 13년 전부터 고아한 한옥에서 보리밥과 막걸리를 팔고 있다. 이 집 메뉴판에 오른 술 메뉴는 딱 하나, 동동주다. 사실 이름은 동동주지만 지평양조장에서 빚어지는 막걸리 특주다. 손님 중 굳이 ‘다른 술을 먹겠다’ 하는 이가 있으면 마트에서 사다 줄 뿐, 메뉴에 다른 술을 올리진 않는다.
“지평막걸리는 톡 쏘면서도 달달하고, 잘 취하지 않아요. 머리도 덜 아프고… 숙취가 없지. 그래서 술을 잘하진 못하지만 막걸리는 좋아해요. 그리고 난 밀보다 쌀 막걸리가 더 맛있어요.
내 입에 밀 막걸리는 조금 저거해요. 쌀은 넘어갈 때 부드럽게 넘어가는데 밀가루는 미끌미끌하다 그래야 하나… 맛의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맛은 때론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게 한다. 막걸리 잔이 비워지자 옛 시어머니 기억이 떠오른다.
“더운 여름날 목마를 때 막걸리 한 잔 먹어봐 꿀떡꿀떡 넘어가지…
그래서 옛날 우리 시어머니들은 막걸리에 그렇게 찬밥을 말아 드셨어. 얼마나 시원한데. 농사일로 지쳐서 밥 먹기 힘들 때, 밥알이 쉬 안 넘어갈 때 막걸리에 말아 먹으면 달달한 맛에 넘어가고, 술기운에 넘어가고… 그때 어머니들은 다들 그렇게 먹고 사셨어.”
그녀의 기억 속, 어머님에 대한 또 다른 기억은 술을 담그던 모습이다.
특히 시어머님은 동네에 유명한 양조장이 있음에도 직접 술을 빚으셨다.
“친정어머님도, 시어머니도 집에서 직접 술을 담그셨었어요. 옛날에는 제사 때고 뭐고 다 담가서 먹었으니까… 지금은 냉장고가 있어 계절에 상관이 없지만, 옛날 냉장고가 없을 때는 주로 겨울에 막걸리를 담갔어요. 보통 담근 지 일주일이 지나면 먹을 수 있었고요.”
막걸리는 예나 지금이나 농사철에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다. 오죽했으면 농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술이라고 하여 ‘농주’라고 불렀을까.
“옛날 우리 시아버지한테 들은 얘긴데, 옛날엔 다 손으로 모내기를 심었잖아요. 그 사람들 마시라고 우리 논 모내기할 때면 항아리 동이에다 막걸리를 받아다 논두렁에 뒀어요. 그럼 사람들이 버들피리 대를 빨대 삼아 동이에 얼굴을 묻고 쪽쪽 마시고… 그러다 취해 자빠지고… 지평 마을의 농사 풍경이었지…”
그녀의 남편과 아들도 이곳, 지평면에서 소를 키우고, 농사를 짓는다.
그래서 모내기 철이면 여전히 그녀는 술을 받아 논으로 간다.
“지금은 다 병으로 나오니까. 옛날처럼 항아리로 가져가진 않죠. 플라스틱병으로 가져다가 논물에다 담가 놓고… 일하다 한 잔씩 먹고… 아들도 막걸리를 좋아해요.”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우리 삶에 술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술을 먹으면… 기분이 좋을 때는 더 좋아지고, 안 좋을 때는 한잔 먹으면 잊어야 할 것들이 묻히고 그러니까는… 그래서 전 술이 좋아요. 살면서 비울 수 있는 건 빨리 비워야 되요.
마음속에다 넣고 있으면 힘들어… 술이 그럴 때 많이 도움이 되지…”
구술정리. 이현주(여행 작가)
[참고자료]
▪ 홈페이지 : 경기도메모리 테마자료 - 경기도민 술 이야기
http://theme.library.kr/sool/intro.html
▪ 책자 :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 경기도사이버도서관 편. 2016.
http://theme.library.kr/sool/book.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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