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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고생



최근 서울도서관이 실시한 서울시 공공도서관 위탁 및 고용실태조사결과가 몇몇 주요 언론에서 비중 있는 기사로 다루어지면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서울시내 167개 공공도서관에 근무하는 사서 164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그 결과가 참으로 암울 합니다.

 

조사 대상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가 36.2%에 달하고, 67.9%가 이용자로부터 폭언을 당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자살 위험자 등을 상대하는 서울 정신건강복지센터 요원이 폭언을 경험하는 비율이 66.1%인데 오히려 도서관에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최근 3년 이내에 업무상 스트레스나 우울증을 경험한 사서가 40.8%이고, 절반 이상인 57.5%가 업무로 인해 몸이 아팠던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어떤 사서는 인터뷰에서 스트레스가 심할 때는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고 말합니다. 그러다보니 직무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42.6점에 그치고 있으며, 10명중 3명은 1년 이내에 이직이나 퇴직하고 싶다는 의사를 나타냈습니다.

 

 


사서 고생이하니까 사서다라고 자조 섞인 농담을 하거나, 사서를 호수위에서 우아하게 유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수면 아래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백조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경기도만 하더라도 도서관 1관당 매년 3만 명 가까운 이용자가 도서관을 찾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하고 평온해 보이는 도서관일 것 같지만 수많은 이용자가 이용하는 공간이다 보니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습니다.

 

2017년 발표된도서관의 문제이용자와 사서 스트레스의 상관성 연구”(심민석, 중앙대학교 대학원)라는 논문에는 도서관 직원들이 경험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민원인이 저와 한 면담 내용을 모두 트집 잡아서 3개월이 넘도록 거의 매일 도서관에 찾아와서 괴롭히고, 큰소리치고...’

 

도서관에서 난동을 부리는... 덩치도 큰사람이...남자가 그러면 심장이 쪼그라 듭니다...’

 

머리핀이 예쁘다거나 계속 지켜보고 있다고... 남자친구가 있는가 묻고... 매일 찾아오고..’

자기는 예외로 처리해 달라고 해서 안 된다고 하니까 30분 넘게 욕을...’

 

책을 대출하러 와서는 책을 면전에서 집어 던지거나, 말을 하지 않고 손가락질로 지시하는 이용자...’

 

서가 사이에서 하의를 벗고 서 있는 남자가 있었어요.’

 

‘850분경에 모든 자료실에 직원이 출근했는지 감시하고 한동안 출근시간을 체크하는 이용자가 있었어요.’

 

이런 사건들 상당수는 조사에 응한 특정 사서만의 경험이 아니라 대부분의 도서관 직원들이 머리를 끄덕이며 동의할만한 사례입니다. 필연적으로 이삿짐센터에서도 꺼려한다는 무거운 책을 다루어야 하다 보니 육체적인 고충도 만만치 않습니다. 도서관 실무 경험을 진솔하게 담아낸 책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강민선, 임시제본소)에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 문장이 나옵니다.
 

출근을 하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장갑을 꼈다. 그날그날 해야 할 작업을 맡아서 했다. 석면 가루를 뒤집어 쓴 채 청구기호 순으로 책을 날랐고 무거운 의자들을 들고 낑낑대며 옥상까지 걸어 올라갔다. 여기저기에서 파스 냄새가 진동을 했고 몸살로 몸져눕는 직원들이 속출했다

 

 

 



 

도서관 직원이 당한 고충은 당사자만 감당해야할 피해가 아닙니다. 같은 공간에서 도서관을 이용하는 다른 모든 이용자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더 나아가 도서관 직원이 수행해야할 업무 의지를 위축시켜 결과적으로 도서관 전체의 서비스 수준을 저하시킬 수 있습니다.

 

20181018일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 고객응대근로자에 대하여 고객의 폭언, 폭행, 그 밖에 적정 범위를 벗어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로 인한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조항이 포함된바 있습니다. 법에서는 폭언을 하지 않도록 문구를 게시한다거나 응대 매뉴얼 개발과 교육과 같은 원칙적인 내용을 수록하고 있는데 도서관도 직원들을 위한 구체적인 보호 장치들이 마련되어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시도 이번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근로환경 개선을 위한 조례 제정 등 대안을 마련해 나간다고 하니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만들어지길 기대해 봅니다.